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난 괴물"
- 8월 정모 <전국 성소위 노래자랑> 우승자 "한낱"님 기고
안녕하세요! 입당한 지도 의제조직에 가입한 지도 얼마되지 않은 한낱입니다. 이 활동명으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라 덧붙이자면, 우리는 한낱 인간이지만 큰 하나가 될 수 있고 동시에 하나하나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뜻으로 정한 활동명이예요.
좋아하는 곡을 알리고 싶었을 뿐인데 이번 노래자랑에서 우승까지 하게되어 기쁩니다. 덕분에 곡 소개글도 이렇게 실을 수 있게 됐네요. 제가 동지들과 나누고 싶었던 곡은 국내 창작뮤지컬인 〈프랑켄슈타인〉의 ‘난 괴물’ 이라는 곡입니다. 이미 국내외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 게임에서 차용된 소재라 매드사이언티스트에 의해 시체 조각들을 모아 기워 만들어진, 관자놀이에 나사를 박고 있는 괴물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실 텐데요, 이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거든요.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괴물은 이름도 받지 못하고 버림받습니다. 빅터는 괴물을 만들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그의 부하 군의관이며 친한 친우이자 연구 동료인 앙리 뒤프레를 살리고자 생명창조의 실험을 강행했는데, 막상 결과물로 나온 건 목에 흉터와 봉합선이 있을 뿐인, 전혀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죠. 괴물은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창조주에게 죽을 뻔하고, 험난한 인간 세상에서 이용만 당하며 살다가 유일하게 마음을 준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이런 삶을 준 빅터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그런 괴물을 빅터는 마지막 순간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앙리라고 부릅니다. 가사를 같이 읽고 느껴주셨으면 해요.
차디찬 땅에 홀로 누워
눈물이 뺨을 적시네
이것이 외로움 혼자만의 슬픔
이 세상에 혼자 단 하나의 존재
철 침대에서 태어난 나는
너희완 달라 인간이 아냐
그럼 나는 뭐라 불려야 하나.
나의 신이여 말해 보소서
대체 난 뭘 위해 태어났나
단지 취미로 호기심에 날 만들었나
숨을 쉬는 나도 생명인데
왜 난 혼자서
여기 울고 있나요
여기 버려진 채로
정녕 내겐 태어난 이유가 없나
나의 창조주시여 뭐라 말 좀 해봐요
왜 난 모두에게 괴물이라 불려야 하나
내게도 심장이 뛰는데
이 슬픔을 참을 수 있는가
피는 누군가의 피
살은 누군가의 살
나는 누군가의 피와 살로 태어났네
나의 신이여 나의 창조주시여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께 돌려 드리리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절망 속에 빠트리리라
어젯밤 처음 난 꿈을 꾸었네
누군가 날 안아주는 꿈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웃었네
나 그 꿈 속에 살 수 없었나
저는 이 넘버를 최근에 아마추어 동호회 무대에 올렸어요. 그런데 그 무대를 같이 준비한 사람들이 이 곡의 퀴어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조금은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모임에서 성소위 동지들과 감상을 나누고 싶었고요. 위의 가사를 읽은 분들에게도 비슷한 마음들이 느껴졌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서 퀴어성, 특히 트랜스젠더의 삶을 읽어낸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신학자 메리 데일리조차도 그 연관성을 읽어냈죠. 그를 비판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당사자이자 트랜스젠더 역사학자인 수잔 스트라이커가 쓴 「샤모니 마을 위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전하는 내 말: 트랜스젠더 분노를 수행하기」에서 스트라이커는 성전환자의 몸은 의학의 창조물이고, 타고나지 않은 꿰매진 살이라고 하며 성전환자의 몸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빗댑니다. 괴물처럼 자신도 내 체현의 수단으로 인하여 종종 온전한 인간 이하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로부터 배제 받는다고도요. 괴물이 그러듯이 말이지요. 나아가 스스로가 괴물임을 수용함으로써 “queer”, “dyke”, “fag”, “slut”, “whore” 과 같은 멸칭들을 성소수자, 레즈비언, 게이, 성적 쾌락을 좇는 여성, 성 산업 노동자들이 재전유했듯이 “창조물”, “괴물”, “부자연스러운” 같은 단어들 또한 트랜스젠더화된 이들이 탈환해 그 단어들이 더 이상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우리가 재전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비-퀴어로 간주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이라는 것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여야만 괴물인가? 너희 모두 괴물이고 너희가 찬양해 마지않는 인간성이라는 것 또한 괴물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했던 공연은 갈라쇼(작품 전체가 아닌, 명장면이나 유명한 곡들만 모아서 하는 공연)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작품들의 스토리들을 이어붙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넘버를 다 부르고 난 괴물에게 괴물로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삶을 비관하고 복수 후에 자진하려는 설정을 덧붙였고요, 무희이자 첩자로 살아남아야 했던 캐릭터가 뒤이어 등장해 대사를 치게 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서 온전히 이해받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절규인지 위로인지 모를 호통을요. 그걸 들은 괴물은 ‘태어난 이유란 건 애초에 없는지도 모르겠구나…….’하며 퇴장하지요. 우리 모두 한낱 괴물인 주제에, 고작 목에 흉터가 눈에 보일 뿐인 괴물만을 괴물이라고 차별해온 인류의 역사가 너무 우습고 끔찍합니다. 같은 글에서 스트라이커가 남긴 글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홀리는 그 ‘자연’은 거짓이다. 그것은 네가 나를 희생하여 유지하고자 하는 특권의 근거 없음을 감추는 날조이니, 내가 대표하는 것으로부터 너희를 보호하려고 그것을 믿지 말라. 너희는 나처럼 구성되었다. 동일한 무법의 포궁이 우리 모두를 낳았다. 내가 내 것을 대면해야 했듯이, 나는 네가 네 자연을 살피기를 청한다. 나는 내가 그리했든 너희들도 비체화를 각오하고 번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 너희도 자신에게서 흉터와 봉합선을 발견할지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난 괴물"
- 8월 정모 <전국 성소위 노래자랑> 우승자 "한낱"님 기고
안녕하세요! 입당한 지도 의제조직에 가입한 지도 얼마되지 않은 한낱입니다. 이 활동명으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라 덧붙이자면, 우리는 한낱 인간이지만 큰 하나가 될 수 있고 동시에 하나하나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뜻으로 정한 활동명이예요.
좋아하는 곡을 알리고 싶었을 뿐인데 이번 노래자랑에서 우승까지 하게되어 기쁩니다. 덕분에 곡 소개글도 이렇게 실을 수 있게 됐네요. 제가 동지들과 나누고 싶었던 곡은 국내 창작뮤지컬인 〈프랑켄슈타인〉의 ‘난 괴물’ 이라는 곡입니다. 이미 국내외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 게임에서 차용된 소재라 매드사이언티스트에 의해 시체 조각들을 모아 기워 만들어진, 관자놀이에 나사를 박고 있는 괴물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실 텐데요, 이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거든요.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괴물은 이름도 받지 못하고 버림받습니다. 빅터는 괴물을 만들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그의 부하 군의관이며 친한 친우이자 연구 동료인 앙리 뒤프레를 살리고자 생명창조의 실험을 강행했는데, 막상 결과물로 나온 건 목에 흉터와 봉합선이 있을 뿐인, 전혀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죠. 괴물은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창조주에게 죽을 뻔하고, 험난한 인간 세상에서 이용만 당하며 살다가 유일하게 마음을 준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이런 삶을 준 빅터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그런 괴물을 빅터는 마지막 순간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앙리라고 부릅니다. 가사를 같이 읽고 느껴주셨으면 해요.
저는 이 넘버를 최근에 아마추어 동호회 무대에 올렸어요. 그런데 그 무대를 같이 준비한 사람들이 이 곡의 퀴어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조금은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모임에서 성소위 동지들과 감상을 나누고 싶었고요. 위의 가사를 읽은 분들에게도 비슷한 마음들이 느껴졌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서 퀴어성, 특히 트랜스젠더의 삶을 읽어낸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신학자 메리 데일리조차도 그 연관성을 읽어냈죠. 그를 비판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당사자이자 트랜스젠더 역사학자인 수잔 스트라이커가 쓴 「샤모니 마을 위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전하는 내 말: 트랜스젠더 분노를 수행하기」에서 스트라이커는 성전환자의 몸은 의학의 창조물이고, 타고나지 않은 꿰매진 살이라고 하며 성전환자의 몸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빗댑니다. 괴물처럼 자신도 내 체현의 수단으로 인하여 종종 온전한 인간 이하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로부터 배제 받는다고도요. 괴물이 그러듯이 말이지요. 나아가 스스로가 괴물임을 수용함으로써 “queer”, “dyke”, “fag”, “slut”, “whore” 과 같은 멸칭들을 성소수자, 레즈비언, 게이, 성적 쾌락을 좇는 여성, 성 산업 노동자들이 재전유했듯이 “창조물”, “괴물”, “부자연스러운” 같은 단어들 또한 트랜스젠더화된 이들이 탈환해 그 단어들이 더 이상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우리가 재전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비-퀴어로 간주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이라는 것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여야만 괴물인가? 너희 모두 괴물이고 너희가 찬양해 마지않는 인간성이라는 것 또한 괴물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했던 공연은 갈라쇼(작품 전체가 아닌, 명장면이나 유명한 곡들만 모아서 하는 공연)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작품들의 스토리들을 이어붙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넘버를 다 부르고 난 괴물에게 괴물로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삶을 비관하고 복수 후에 자진하려는 설정을 덧붙였고요, 무희이자 첩자로 살아남아야 했던 캐릭터가 뒤이어 등장해 대사를 치게 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서 온전히 이해받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절규인지 위로인지 모를 호통을요. 그걸 들은 괴물은 ‘태어난 이유란 건 애초에 없는지도 모르겠구나…….’하며 퇴장하지요. 우리 모두 한낱 괴물인 주제에, 고작 목에 흉터가 눈에 보일 뿐인 괴물만을 괴물이라고 차별해온 인류의 역사가 너무 우습고 끔찍합니다. 같은 글에서 스트라이커가 남긴 글귀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