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결의 정치: 비어 있는 왼쪽을 다시 짓다
- 고유미 공동대표
2016년 총선 이후 진보진영의 표가 반 토막 나는 동안, 비례위성정당과의 합체로 세를 불린 민주당은 스스로를 ‘중도보수’로 명명하며 주류 굳히기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의 공개적 우클릭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복지보다 성장, 평화보다 동맹, 노동보다 경쟁력을 말하는 그들의 언어는 더 이상 진보의 언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당이 우클릭한 자리를 채울 새로운 언어와 세력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당의 국회의원들을 진보의 대표주자 삼아 의회정치에 주력하던 유력 진보정당은 원외로 밀려났고,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세력들은 민주당의 영향력 밖에서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요원한 상황입니다.
민주당이 진보를 참칭하며 선거제도를 해킹해 중도보수로 착실히 자리 잡는 동안 보수 양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는 더욱 고착화 되었고, 우리 사회의 왼쪽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민주당과 함께 오른쪽으로 빠르게 이동한 결과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토대부터 다시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비상한 시기에 선출된 대표로서,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누군가가 차지하면 될 ‘왼쪽의 공백’으로 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의 진보정치는 급진성은 남았으나 연결성을 잃었고, 도덕성을 강조하나 설득력은 줄었고, 의제 다양성은 풍성해졌으나 전략적 통일성이 모호하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념적 공백이나 득표의 일시적 유실이 아니라, 진보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각 속에서 서서히 멀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비어 있는 왼쪽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비어 있는 왼쪽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로 질문이 바뀌어야 하며,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좌파정치가 다시 우리 사회 전체와 연결될 수 있도록 복무하는 연결 고리로서의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결하고자 하는 첫 번째 축은,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연결입니다.
진보정치는 언제나 사회운동 속에서 숨 쉬어 왔습니다. 노동, 여성, 환경, 인권, 지역의 운동이 함께 호흡할 때, 그것은 제도 밖의 저항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개약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지난 십여 년간 이 연결이 무뎌졌고, 이 틈에 진보정당은 대중적 감각을 잃었습니다. 노동당은 이 단절을 다시 이어나가야 합니다. 진보정당은 선거 때만 활발하게 작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플랫폼이 되어야 하고, 사회운동은 진보정당을 통해 다양한 요구들을 정책적 대안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두 번째 축은 계급과 정체성의 연결입니다.
‘노동’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균열선이지만, 오늘의 불평등은 임금 격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돌봄 위기, 젠더 폭력, 생태 위기,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안이 얽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정치는 더 이상 ‘노동자 대 자본가’의 도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노동당이 지향하는 진보는, 계급적 조건과 정체성의 경험을 함께 읽어내는 정치,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의 조건을 되찾는 정치’입니다. 그것은 돌봄이 권리가 되는 사회, 기후위기 속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경제, 기술변화 속에서도 존엄이 보장되는 노동을 말합니다. 노동당이 낡은 이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계급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새로운 평등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개척자가 될 수 있도록 분투하겠습니다.
세 번째 축은 지역과 세대의 연결입니다.
진보정당의 분열은 단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 간의 단절에서도 비롯되었습니다. 수도권 중심의 정치, 선거 중심의 활동, 고령화된 조직은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았고, 지역의 생활 의제는 중앙정치의 언어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 단절을 넘어 지역과 세대를 새롭게 이어내는 정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내 삶의 구체적인 조건을 바꾸는 생활운동을 기반에 두고, 지역의 목소리, 새로운 세대의 주장이 쉽게 울려 퍼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완전 비례대표제, 정당법 개정과 같은 제도 개혁은 이런 연결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비워진 왼쪽은 진보정당의 몫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대표를 자임해 차지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비워진 왼쪽은 새로 만들어져야 할 자리입니다. 저는 위의 세 가지 연결을 통해, 좌파정치를 재건하는 기지이자 다양한 운동과 실험이 교차하는 거점으로 노동당을 세우려 합니다. 사라진 진보의 언어를 복원하고, 끊어진 연결의 구조를 다시 세우며, 운동과 제도정치를 잇는 새로운 회로를 설계하는 일 — 이것이 ‘비어 있는 왼쪽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텅 빈 왼쪽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 길 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좌파정치를 다시 연결하려는 정당이다.
노동당은 사회운동과 제도정치, 계급과 정체성, 세대와 지역을 다시 묶어 새로운 진보정치의 생태계를 복원할 것이다.”
연결의 정치: 비어 있는 왼쪽을 다시 짓다
- 고유미 공동대표
2016년 총선 이후 진보진영의 표가 반 토막 나는 동안, 비례위성정당과의 합체로 세를 불린 민주당은 스스로를 ‘중도보수’로 명명하며 주류 굳히기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의 공개적 우클릭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복지보다 성장, 평화보다 동맹, 노동보다 경쟁력을 말하는 그들의 언어는 더 이상 진보의 언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당이 우클릭한 자리를 채울 새로운 언어와 세력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당의 국회의원들을 진보의 대표주자 삼아 의회정치에 주력하던 유력 진보정당은 원외로 밀려났고,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세력들은 민주당의 영향력 밖에서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요원한 상황입니다.
민주당이 진보를 참칭하며 선거제도를 해킹해 중도보수로 착실히 자리 잡는 동안 보수 양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는 더욱 고착화 되었고, 우리 사회의 왼쪽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민주당과 함께 오른쪽으로 빠르게 이동한 결과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토대부터 다시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비상한 시기에 선출된 대표로서,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누군가가 차지하면 될 ‘왼쪽의 공백’으로 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의 진보정치는 급진성은 남았으나 연결성을 잃었고, 도덕성을 강조하나 설득력은 줄었고, 의제 다양성은 풍성해졌으나 전략적 통일성이 모호하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념적 공백이나 득표의 일시적 유실이 아니라, 진보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각 속에서 서서히 멀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비어 있는 왼쪽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비어 있는 왼쪽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로 질문이 바뀌어야 하며,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좌파정치가 다시 우리 사회 전체와 연결될 수 있도록 복무하는 연결 고리로서의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결하고자 하는 첫 번째 축은,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연결입니다.
진보정치는 언제나 사회운동 속에서 숨 쉬어 왔습니다. 노동, 여성, 환경, 인권, 지역의 운동이 함께 호흡할 때, 그것은 제도 밖의 저항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개약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지난 십여 년간 이 연결이 무뎌졌고, 이 틈에 진보정당은 대중적 감각을 잃었습니다. 노동당은 이 단절을 다시 이어나가야 합니다. 진보정당은 선거 때만 활발하게 작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플랫폼이 되어야 하고, 사회운동은 진보정당을 통해 다양한 요구들을 정책적 대안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두 번째 축은 계급과 정체성의 연결입니다.
‘노동’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균열선이지만, 오늘의 불평등은 임금 격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돌봄 위기, 젠더 폭력, 생태 위기,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안이 얽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정치는 더 이상 ‘노동자 대 자본가’의 도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노동당이 지향하는 진보는, 계급적 조건과 정체성의 경험을 함께 읽어내는 정치,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의 조건을 되찾는 정치’입니다. 그것은 돌봄이 권리가 되는 사회, 기후위기 속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경제, 기술변화 속에서도 존엄이 보장되는 노동을 말합니다. 노동당이 낡은 이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계급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새로운 평등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개척자가 될 수 있도록 분투하겠습니다.
세 번째 축은 지역과 세대의 연결입니다.
진보정당의 분열은 단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 간의 단절에서도 비롯되었습니다. 수도권 중심의 정치, 선거 중심의 활동, 고령화된 조직은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았고, 지역의 생활 의제는 중앙정치의 언어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 단절을 넘어 지역과 세대를 새롭게 이어내는 정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내 삶의 구체적인 조건을 바꾸는 생활운동을 기반에 두고, 지역의 목소리, 새로운 세대의 주장이 쉽게 울려 퍼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완전 비례대표제, 정당법 개정과 같은 제도 개혁은 이런 연결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비워진 왼쪽은 진보정당의 몫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대표를 자임해 차지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비워진 왼쪽은 새로 만들어져야 할 자리입니다. 저는 위의 세 가지 연결을 통해, 좌파정치를 재건하는 기지이자 다양한 운동과 실험이 교차하는 거점으로 노동당을 세우려 합니다. 사라진 진보의 언어를 복원하고, 끊어진 연결의 구조를 다시 세우며, 운동과 제도정치를 잇는 새로운 회로를 설계하는 일 — 이것이 ‘비어 있는 왼쪽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텅 빈 왼쪽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 길 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좌파정치를 다시 연결하려는 정당이다.
노동당은 사회운동과 제도정치, 계급과 정체성, 세대와 지역을 다시 묶어 새로운 진보정치의 생태계를 복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