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형 신임 경사노위 위원장이 11월 5일 취임했다. 언론에서는 1999년 노사정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임명된 15명의 위원장 중 최초의 법률가 출신이란 점에 주목했다. 민주노총에게는 ‘전직 대법관’이란 명함 못지않게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혹은 ‘고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장’으로 더 익숙하다. 법원에서 드문 노동법 전문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노동계 평판도 나쁘지 않다. 사회갈등 조정에 발군의 역량을 발휘했다. 단지 ‘기계적 조정’을 넘어, 노동계의 핵심 요구 관철을 이뤄낸 적도 있다. 이런 그가 경사노위원장을 맡았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11월 김지형 경사노위원장 임명은 6월에 있었던 ‘김영훈 노동장관’ 임명으로 드러낸 이재명 노동정책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김영훈-김지형으로 상징되는 현 정부 노동정책 부위의 특징은 ‘모듈화’다. 대통령실-노동부-국회 일부를 관통하는 ‘실질 의사결정 단위’가 (그 직위-직무와 상관 없이) 하나의 세트로 팀을 이뤄 외삽된 형태다. 나름 상대적으로 좀 더 개혁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지만, 핵심적으로는 민주당-노동부 내 노동정책의 주류 세력이 아닌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기존 정치-행정 화법과 다르다. 노조법 2,3조 개정 과정에서 ‘쟁의행위 대상 확대’ 등 경총의 핵심적인 반대 의제가 포함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징이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노동부 관료들의 수많은 반대와 공작이 있었고, 그래서 막판 핵심 의제가 좌초될 위기도 높았지만, 이를 돌파한 것 역시 이들 ‘노동정책 모듈’에 속한 이들의 역할이 컸다. 입법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나마 이 정도 법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노동안전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정책 모듈’은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입법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단계까지는 힘을 발휘하지만, 이후 준비-집행과정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단단한 관료층이나 국회 내 (한국노총 출신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주류 노동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온갖 제도 후퇴(창구단일화제도 도입, 쟁의행위 대상 심사 등등)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많은 개혁과제들이 발표 이후 이를 실현하는 길목을 돌 때마다 ‘후퇴’ 딱지를 하나씩 더 붙이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모듈’이 법과 제도를 생산할지언정, 이를 실행하는 것은 여전히 ‘주류 의원’과 ‘주류 관료’의 관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취약하다. 내부에서 공격도 많이 받는다. 레고 조각처럼, 언제 뽑혀나가 다른 부품으로 대체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지원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둘째, 지지율 추이나 여론의 동향에 지나치게 강박받는다. 취약한 존립기반 속에 힘을 얻을 수 있는 동력을 여기에서 찾는 모습이 반복해서 보인다. ‘주4.5일제’와 ‘정년연장’ 두 의제를 두고 나타나고 있는 우선 의제 역전 현상도 여기서 문제가 또 생긴다. 여론조사 돌려보고 더 높은 지지를 받는 정책부터 손대는 셈이다. 노정교섭 의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천공항 파업에 정부가 보인 태도도 ‘인국공 사태 다시 터질라’라며 경계하고 떨어져 있으려는 두려움이었다. 이 정부 노동정책은 결국 지지율 추이에 따라 큰 파도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정권 혹은 국정책임자의 ‘신념’이나 ‘원칙’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런 ‘철학과 힘이 취약한 정책주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덩치를 불리고, 반대를 줄이는 길을 택한다. 민주노총 출신 전현직 간부를 품어 세력을 키우려는 이유도, 각종 TF-노사정협의체를 의제마다 꾸리는데 여념이 없는 이유도, ‘총연맹 대표성’을 과도하게 부여하며 각종 정책추진 과정에서 산별-지역 등 직접 이해관련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태도도(산별은 비판만 하는데 총연맹은 좋은 말만 해주니까) 이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집행부의 친정부 행보 노골화 등 정권 외부의 요인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저항 없는 정책 후퇴의 반복’으로 귀결될 위험이 매우 높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포섭전략’이다. 한국노총이 주로 ‘포섭의 대상’이 되고 민주노총이 ‘배제의 대상’이 됐던 것과 다르다. 현장이 주로 ‘포섭의 대상’이 되고 상급단체가 ‘배제의 대상’이 됐던 것과도 또 다르다. ‘포섭과 배제’가 정부 내 주류 세력에 의해 이뤄졌던 과거와도 다르다. 이런 차이는 투항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위안과 더 적은 죄책감을 보장한다. 경사노위 위원장 임명에 따른 활동 본격화 이후, 각종 노동의제가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오르는 때마다, 이러한 포섭 현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민주노조에게 위험한 이유다.
김지형 신임 경사노위 위원장이 11월 5일 취임했다. 언론에서는 1999년 노사정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임명된 15명의 위원장 중 최초의 법률가 출신이란 점에 주목했다. 민주노총에게는 ‘전직 대법관’이란 명함 못지않게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혹은 ‘고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장’으로 더 익숙하다. 법원에서 드문 노동법 전문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노동계 평판도 나쁘지 않다. 사회갈등 조정에 발군의 역량을 발휘했다. 단지 ‘기계적 조정’을 넘어, 노동계의 핵심 요구 관철을 이뤄낸 적도 있다. 이런 그가 경사노위원장을 맡았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11월 김지형 경사노위원장 임명은 6월에 있었던 ‘김영훈 노동장관’ 임명으로 드러낸 이재명 노동정책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김영훈-김지형으로 상징되는 현 정부 노동정책 부위의 특징은 ‘모듈화’다. 대통령실-노동부-국회 일부를 관통하는 ‘실질 의사결정 단위’가 (그 직위-직무와 상관 없이) 하나의 세트로 팀을 이뤄 외삽된 형태다. 나름 상대적으로 좀 더 개혁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지만, 핵심적으로는 민주당-노동부 내 노동정책의 주류 세력이 아닌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기존 정치-행정 화법과 다르다. 노조법 2,3조 개정 과정에서 ‘쟁의행위 대상 확대’ 등 경총의 핵심적인 반대 의제가 포함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징이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노동부 관료들의 수많은 반대와 공작이 있었고, 그래서 막판 핵심 의제가 좌초될 위기도 높았지만, 이를 돌파한 것 역시 이들 ‘노동정책 모듈’에 속한 이들의 역할이 컸다. 입법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나마 이 정도 법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노동안전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정책 모듈’은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입법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단계까지는 힘을 발휘하지만, 이후 준비-집행과정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단단한 관료층이나 국회 내 (한국노총 출신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주류 노동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온갖 제도 후퇴(창구단일화제도 도입, 쟁의행위 대상 심사 등등)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많은 개혁과제들이 발표 이후 이를 실현하는 길목을 돌 때마다 ‘후퇴’ 딱지를 하나씩 더 붙이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모듈’이 법과 제도를 생산할지언정, 이를 실행하는 것은 여전히 ‘주류 의원’과 ‘주류 관료’의 관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취약하다. 내부에서 공격도 많이 받는다. 레고 조각처럼, 언제 뽑혀나가 다른 부품으로 대체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지원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둘째, 지지율 추이나 여론의 동향에 지나치게 강박받는다. 취약한 존립기반 속에 힘을 얻을 수 있는 동력을 여기에서 찾는 모습이 반복해서 보인다. ‘주4.5일제’와 ‘정년연장’ 두 의제를 두고 나타나고 있는 우선 의제 역전 현상도 여기서 문제가 또 생긴다. 여론조사 돌려보고 더 높은 지지를 받는 정책부터 손대는 셈이다. 노정교섭 의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천공항 파업에 정부가 보인 태도도 ‘인국공 사태 다시 터질라’라며 경계하고 떨어져 있으려는 두려움이었다. 이 정부 노동정책은 결국 지지율 추이에 따라 큰 파도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정권 혹은 국정책임자의 ‘신념’이나 ‘원칙’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런 ‘철학과 힘이 취약한 정책주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덩치를 불리고, 반대를 줄이는 길을 택한다. 민주노총 출신 전현직 간부를 품어 세력을 키우려는 이유도, 각종 TF-노사정협의체를 의제마다 꾸리는데 여념이 없는 이유도, ‘총연맹 대표성’을 과도하게 부여하며 각종 정책추진 과정에서 산별-지역 등 직접 이해관련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태도도(산별은 비판만 하는데 총연맹은 좋은 말만 해주니까) 이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집행부의 친정부 행보 노골화 등 정권 외부의 요인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저항 없는 정책 후퇴의 반복’으로 귀결될 위험이 매우 높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포섭전략’이다. 한국노총이 주로 ‘포섭의 대상’이 되고 민주노총이 ‘배제의 대상’이 됐던 것과 다르다. 현장이 주로 ‘포섭의 대상’이 되고 상급단체가 ‘배제의 대상’이 됐던 것과도 또 다르다. ‘포섭과 배제’가 정부 내 주류 세력에 의해 이뤄졌던 과거와도 다르다. 이런 차이는 투항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위안과 더 적은 죄책감을 보장한다. 경사노위 위원장 임명에 따른 활동 본격화 이후, 각종 노동의제가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오르는 때마다, 이러한 포섭 현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민주노조에게 위험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