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델 카스트로 연설문 (1992, 리우 지구환경정상회의)
<편집자 주> 올해 브라질의 벨렘에서는 제30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0)가 열렸다.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협약의 시작은 19992년 6월 3일부터 6월 14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리우 환경정상회의)였다. 리우정상회의의 슬로건은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이다.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존, 환경보전과 개발의 양립을 목표로 한 리우정상회의’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한 리우선언이 채택되었다. 리우회의 또는 지구정상회의라고도 하는 이 회의는 전세계 114개 국가 정상과 186개국 정부 대표단이 참여했고 각국의 비정부기구도 모여 ‘지구환경회의’를 개최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이제는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담은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이 발표되었고, 무엇보다 기후변화 상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대책마련을 위한 ‘기후변화협약’과 생태계 파괴와 지구 생물종 멸종을 막기 위한 ‘생물종다양성협약’이 만들어졌다. 이때인 6월 12일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도 있었다. 이 연설에서 지구의 생태와 환경에 관한 그의 접근 관점을 알 수 있으며, 3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충분히 의미있는 되새겨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이 글의 원문은 이것이며,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수정보완하여 소개한다. |
중요한 생물학적 종(種)인 인류가, 자연 서식지의 급속하고도 지속적인 파괴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서야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이를 막기에는 거의 너무 늦은 시점입니다.
이 끔찍한 환경 파괴에 대한 주된 책임은 소비사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소비사회의 기원은 과거 식민 종주국들이며, 이는 제국주의 정책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인류 대다수를 괴롭히는 후진성과 빈곤을 낳았습니다.
세계 인구의 20%에 불과한 이들 국가가 전 세계 금속의 3분의 2, 에너지의 4분의 3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와 강을 오염시켰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약화시키고 파괴하였습니다. 기후조건을 변화시키는 가스로 대기를 포화시켜, 이로 인해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숲은 사라지고 사막은 확장되고 있습니다. 매년 수십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바다로 쓸려 나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있습니다. 인구 압박과 빈곤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파괴하는 절박한 행동을 낳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제3세계 국가들, 어제는 식민지였던 국가들, 오늘 불공정한 세계 경제 질서에 의해 착취당하고 약탈당하는 국가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발전을 막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저개발과 빈곤을 조장하는 모든 것은 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제3세계에서는 매년 수천만 명의 남녀노소가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는 양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불평등한 무역, 보호주의, 외채 문제는 생태적 균형을 파괴하고 환경 파괴를 촉진합니다.
만약 우리가 인류를 이런 자멸의 길에서 구하고자 한다면, 전 세계의 부와 기술은 더 잘 분배되어야 합니다.
소수 국가에서 사치와 낭비를 줄여 지구 곳곳에서 빈곤과 기아를 줄여야 합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을 제3세계로 이전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고,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수립해야 합니다.
오염 없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필요한 모든 과학을 활용해야 합니다.
외채가 아닌 생태 부채를 갚아야 합니다. 인류가 아닌 기아를 근절하십시오.
이제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명분도 사라지고, 냉전이나 군비 경쟁, 군사비 지출을 계속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제3세계의 발전을 촉진하고 지구의 생태 파괴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 자원을 즉시 투입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기심은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패권주의도 멈춰야 합니다.
무감각, 무책임, 기만 역시 이제는 끝나야 합니다.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내일이면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입니다.
피델 카스트로 연설문 (1992, 리우 지구환경정상회의)
<편집자 주>
올해 브라질의 벨렘에서는 제30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0)가 열렸다.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협약의 시작은 19992년 6월 3일부터 6월 14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리우 환경정상회의)였다. 리우정상회의의 슬로건은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이다.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존, 환경보전과 개발의 양립을 목표로 한 리우정상회의’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한 리우선언이 채택되었다.
리우회의 또는 지구정상회의라고도 하는 이 회의는 전세계 114개 국가 정상과 186개국 정부 대표단이 참여했고 각국의 비정부기구도 모여 ‘지구환경회의’를 개최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이제는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담은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이 발표되었고, 무엇보다 기후변화 상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대책마련을 위한 ‘기후변화협약’과 생태계 파괴와 지구 생물종 멸종을 막기 위한 ‘생물종다양성협약’이 만들어졌다. 이때인 6월 12일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도 있었다. 이 연설에서 지구의 생태와 환경에 관한 그의 접근 관점을 알 수 있으며, 3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충분히 의미있는 되새겨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이 글의 원문은 이것이며,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수정보완하여 소개한다.
중요한 생물학적 종(種)인 인류가, 자연 서식지의 급속하고도 지속적인 파괴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서야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이를 막기에는 거의 너무 늦은 시점입니다.
이 끔찍한 환경 파괴에 대한 주된 책임은 소비사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소비사회의 기원은 과거 식민 종주국들이며, 이는 제국주의 정책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인류 대다수를 괴롭히는 후진성과 빈곤을 낳았습니다.
세계 인구의 20%에 불과한 이들 국가가 전 세계 금속의 3분의 2, 에너지의 4분의 3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와 강을 오염시켰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약화시키고 파괴하였습니다. 기후조건을 변화시키는 가스로 대기를 포화시켜, 이로 인해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숲은 사라지고 사막은 확장되고 있습니다. 매년 수십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바다로 쓸려 나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있습니다. 인구 압박과 빈곤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파괴하는 절박한 행동을 낳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제3세계 국가들, 어제는 식민지였던 국가들, 오늘 불공정한 세계 경제 질서에 의해 착취당하고 약탈당하는 국가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발전을 막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저개발과 빈곤을 조장하는 모든 것은 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제3세계에서는 매년 수천만 명의 남녀노소가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는 양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불평등한 무역, 보호주의, 외채 문제는 생태적 균형을 파괴하고 환경 파괴를 촉진합니다.
만약 우리가 인류를 이런 자멸의 길에서 구하고자 한다면, 전 세계의 부와 기술은 더 잘 분배되어야 합니다.
소수 국가에서 사치와 낭비를 줄여 지구 곳곳에서 빈곤과 기아를 줄여야 합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을 제3세계로 이전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고,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수립해야 합니다.
오염 없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필요한 모든 과학을 활용해야 합니다.
외채가 아닌 생태 부채를 갚아야 합니다. 인류가 아닌 기아를 근절하십시오.
이제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명분도 사라지고, 냉전이나 군비 경쟁, 군사비 지출을 계속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제3세계의 발전을 촉진하고 지구의 생태 파괴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 자원을 즉시 투입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기심은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패권주의도 멈춰야 합니다.
무감각, 무책임, 기만 역시 이제는 끝나야 합니다.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내일이면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