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불러 올 세계질서의 변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작년부터 세계를 뒤흔들 최대 변수는 트럼프 2.0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였다. 마가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걸고 재집권한 트럼프 2기 정부는 예상보다 더 거칠고 공세적인 행보로 취임 초부터 전세계를 경악케 하면서, 미국과 세계질서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등장했다. 우선, 그의 공약대로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민중 행보를 보였다. 국내적으로 본다면, 노동자 권리에 대한 공격, 복지 축소, 감세, 친자본 규제완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물가인상 등, 감당불가능한 생계 위기로 미국의 노동자민중을 내몰았다.
21세기판 극우 파시즘의 도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노골적 극우 정치가 같이 펼쳐졌다. 극우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문화전쟁의 일환으로 성소수자 권리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대해 ‘반국가 적대세력’으로 낙인찍고 ‘좌파 척결’이란 기치로 탄압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외 반파시즘 운동단체인 ‘안티파’를 테러단체로까지 지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반이민 정치’도 1기 때보다 더 노골화되었다. ‘이주민이 고유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주민이 복지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라며, 이민자를 국가안보를 해치는 존재로 낙인찍는 전세계 극우의 공통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취임 첫날부터 이주민 추방을 본격화했다. 이민관세단속국(ICE)에 의한 폭력적인 색출, 체포, 추방이 자행되고 있으며, 이민 추방 반대시위에 대해서도 주방위군과 해병대까지 투입하는가 하면, 시위 진압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까지 발생시키는 폭력정치를 펼치고 있다. 가히 21세기 극우 파시즘의 재현이라 부를 만하다.
미국 우선주의의 대외 전략 버전인 ‘돈로 독트린’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파시즘적 통치행위는 전세계를 향한 협박, 강탈, 일방주의, 군사주의는 트럼프 2.0의 대외전략과 밀접히 연결된다. 트럼프 2.0의 대외전략은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과 먼로주의를 결합한 용어로, 트럼프 정부가 2025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탈냉전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먼로주의의 전통을 무시한 과도한 개입이나 이상주의적 접근이라 비판하면서, 탈냉전기 미국 대외정책을 상징하는 ‘글로벌리즘’과 단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과의 단절은 NSS 문서 안에 있는 문장,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전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에서 압축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런 돈로주의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미국의 힘을 서반구, 즉 아메리카 대륙에 집중하겠다는 것
NSS에서는 서반구에서의 미국의 압도적 우위와 미국 본토 방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과 마약 통제 강화, ‘필요시 치명적인 군사력 동원’까지 언급하고 있다. NSS의 하위 문서격으로 올 1월 발표한 국가방위전략(NDS)에서도 “서반구 전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이고 두려움 없이 방어할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는 취임 후 트럼프 정부의 현실 정책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의 안전을 명분으로 한 폭력적인 이민 추방, 멕시코만의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부르기,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장악 시도 등이 그것이다. 중남미 우파를 지원하고 반미/좌파정부를 붕괴하려는 시도도 노골화했다. 작년에는 쿠데타 시도로 기소된 브라질 극우정치인 보우소나루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추라며 브라질에 대해 고율 관세 폭탄을 때리고, 온두라스 선거 개입으로 우파 정치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올 초에는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그 다음의 공격 대상은 쿠바이다. 트럼프는 쿠바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쿠바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석유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국가들에 대한 관세 부과를 명령해, 쿠바에 대한 석유 봉쇄조치를 취하면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유엔도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온갖 패악질로 자신의 뒷마당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1824년 선언된 먼로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 식민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자, 신생 강국으로 커가던 미국이 유럽에 '서반구는 우리 세력권이니 건들지 마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실제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아메리카 전대륙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과 지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힘이 유럽국가들을 압도하면서, 미국의 외교 전략이 '지역 패권'에서 '세계 패권'으로 전환하면서 먼로주의는 쇠퇴한 바 있다. 트럼프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19세기의 먼로주의를 21세 들어 다시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안보 강조
바이든 정부 시기에도 있었던 경제안보의 강조, 즉 ‘경제와 안보의 통합’이라는 시각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주요 공급망 확보, 국내 산업의 재건’을 안보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주요 공급망 특히 안정적 광물 확보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대가로 한 광물협정 체결, 희토류와 리튬 등 주요 광물의 매장량이 많은 중남미와 그린란드에 대한 장악 시도, 관세의 무기화를 통한 주요 동맹국으로부터 미국 내 투자 유치 등을 압박해 냈다. 미중경쟁에서 쇠퇴하는 미국의 경제력을 복원하고 중국과 분리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동맹에 대한 비용 전가 또는 동맹구조의 균열
트럼프 2기는 우선 동맹국에게도 예외없이 약탈적인 관세 압박을 펼쳤다. 또 NSS에서 "동맹은 국방지출을 늘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방어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동맹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동맹국의 국방지출 증액과 역할 확대를 동맹 유지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런 협박의 결과, 나토와 한국 등 동맹국들은 미국 내 투자와 미국산 물품 구매를, 그리고 국방비 대폭 증액에 합의했다. 더욱이 한국은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에 의한 안보 우산이 언제 걷힐 줄 모른다는 동맹국의 우려, 이른바 ‘방기의 위험’를 불러오면서, 미국 중심의 동맹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유럽편을 들지 않고, 유럽연합과 유럽의 정치를 극우적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심지어 나토 동맹국의 땅인 그린란드까지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을 유지시켜 준 ‘대서양 동맹’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다.
다자주의-규칙 기반 질서의 거부
트럼프 2기는 미국 자신이 주도해 만든 세계무역기구와 무역규칙을 무시하면서 고관세 협박으로 각국과 개별적으로 협상, 거래하면서 자국의 이익(투자 유치, 미국산 무기 구매, 국방비 증액 등)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다자주의 자유무역 질서는 파괴되고, 국제통상 환경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도 무너졌다.
미국이 주도해 만든 유엔 등 다자기구의 역할을 불신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면서, 국제협력이 절실한 환경, 보건협력, 빈곤퇴치 등 문제에서 발을 빼면서, UN 기구 35개를 포함해 국제기구 66개에서 탈퇴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도구인 ‘평화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건설하고, 이를 유엔을 대체하는 국제기구로까지 구상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제법과 국제규범과 규칙을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이 전략은 군사력이라는 폭력 행사를 동반한다. 이란 핵시설에 공습, 베네수엘라의 민간선박 격침 및 마두로 납치에 이어,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말하고,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한 군사력 동원 협박까지 벌였다. 마두로 납치 후 백악관 SNS에 올린 “까불면 죽는다(FAFO)”가 상징하듯이 더 이상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천사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힘의 과시를 통해 자신에게 굴복하라고 협박하는 깡패임을 공공연히 표방한다. 이것이 돈로주의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의 실체이다.
돈로주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글로벌리즘으로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우선 서반구에 힘을 집중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확고히 구축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적극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적 힘을 키우고, 이미 중남미 지역의 핵심 무역 대상국이자 투자자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중남미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미국의 서반구에 대한 지배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돈로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 일극(헤게모니)체제의 위기의 반영물이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가주의 세력(미 지배세력 한 분파)의 위기 돌파 전략이다.
둘째, 서반구에 대한 힘의 집중이 ‘고립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NSS에서도 “미국의 이익에 초점을 둔 ‘집중적 해외 참여 전략’”을 밝히고 있는 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력까지 서슴없이 동원하는 ‘선택적 개입주의’를 밝히고 있다. 중동지역에 대한 개입(이란 핵시설 공습,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지원과 가자평화위원회를 통한 자자기구에 대한 식민 지배 야욕),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개입,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 봉쇄를 위해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이는 것 등은 돈로주의가 ‘미국이 세계패권국가의 지위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 아님을 밀해주고 있다. NSS에서도 “지배적인 적의 출현 방지”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미국 힘이 약화된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맹국에 대한 비용 전가를 통해 미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즉 돈로주의는 중국을 향한 이전과 다른 방식의 견제 전략이다.
돈로주의는 세계질서의 급격한 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마가주의, 또는 돈로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국의 정치·경제적 취약성과 패권 쇠퇴의 반영이자, 그 위기감에 대한 반동적 대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 정책의 기준이자 정치적 수사였던 "민주주의의 방어”, "자유의 확장”,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트럼프 2기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다자주의 대신 미국 우선주의에 근거한 일대일 협상이, 규칙과 규범 대신 노골적 협박과 강탈이, 자유나 민주주의 라는 정치적 수사를 걷어치운 노골적인 협박이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시작된 미 일극체제의 위기, 미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를 더욱 가속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악명높은 파시즘 국가, 국제 깡패국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질서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로 미국의 쇠퇴를 모면하려는 트럼프의 전략은 다자주의와 규범·규칙을 파괴하고, 침략을 불사하며, 자신의 위기를 다른 국가들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동맹 균열 정책과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은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간의 군비경쟁을 더욱 촉발하고, ‘방기의 위험’에 처한 나토 회원국의 군비강화 대열에 끌어들이면서 이른바 군사케인스주의를 확산시키고, 전세계적 군비경쟁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실제 올해 2월 5일 만료된 미-러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도 트럼프의 거부로 연장이 불투명해 상태이다.
그러나 미국을 대체할 헤게모니 국가(진영)도 부재한 상황이다. 결국 돈로주의가 불러온 세계정세는 2010년대부터 시작한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지역 강국들(인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의 치열한 실리외교가 진행되면서, 무질서와 혼란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의 무기화, 침략 전쟁, 전세계 군비경쟁의 격화 등으로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세계정세의 변동을 놓고 1차 세계대전 전야에 제국주의론을 쓴 레닌이 소환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복원이 대안인가
돈로주의를 놓고, 주류의 시각은 ‘제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한다. 트럼프에 의해 파괴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다시 복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이 ‘세계경찰국가’로서, 다시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미일극체제의 복원(패권 안정론)이다.
그러나 이 시각은 미국이 이전에도 제국주의 국가였음을 망각하는 것이며, 미국이 주도해서 세운 자유주의 질서가 철저히 미국의 이익(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 독점자본)을 위해 세워지고 운영된 것임을 기각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세계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심화했다는 점 또한 지우는 것이다. 물론 자유주의 질서가 돈로주의의 폭력성과 일방주의보다는 낫다. 일방주의가 아니라 다자주의가, 폭력이 아닌 규칙이 세계질서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자주의와 규칙이 누구를 위한 규칙이고 다자주의인가가 중요하다. 패권국을 위한 위한 규칙과 다자주의가 세계질서의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위해 주변부와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수탈, 착취해온 패권의 질서라는 점에서,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정치적 수사로 감싼 ‘우아한 위선’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 돈로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트럼피즘의 토대가 노동자와 민중을 삶의 위기로 내몬 자유주의 정치에 대중적 반발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돈로주의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땅에 떨어진 이상, 미일극체제 복원의 가능성도 현실에서 더욱 멀어졌다.
대안은 다극화인가?
위 입장과 상반되는 입장이 ‘다극화’론이다. 돈로주의로 다극화 경향이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다극화가 세계의 진보를 가져오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돈로주의로 미 일극체제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중국-러시아 중심의 ‘다극화’ 추진 세력들이 세계질서를 ‘진보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은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안정적으로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적 리더십이 없으며, 일국 차원에서 보더라도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미’만을 기치로 할 뿐,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지향을 갖고 있지 않는 다극화는 세계질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욱이 ‘극’이라는 개념 자체가 강대국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세계 지배를 두고 경쟁하는 지배계급 간의 재편에 불과할 수 있다.
마가주의와 돈로주의는 자유주의 질서의 붕괴 위험이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극우세력에 의해 반동적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이는 전세계 좌파·사회주의운동의 취약한 역량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돈로주의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지고 있다. ‘사회주의냐-야만이냐’를 어떻게 현 시대의 화두로 만들 것인지, 사회주의를 대안적 비전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를 위해 좌파·사회주의운동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초점]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불러 올 세계질서의 변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작년부터 세계를 뒤흔들 최대 변수는 트럼프 2.0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였다. 마가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걸고 재집권한 트럼프 2기 정부는 예상보다 더 거칠고 공세적인 행보로 취임 초부터 전세계를 경악케 하면서, 미국과 세계질서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등장했다. 우선, 그의 공약대로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민중 행보를 보였다. 국내적으로 본다면, 노동자 권리에 대한 공격, 복지 축소, 감세, 친자본 규제완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물가인상 등, 감당불가능한 생계 위기로 미국의 노동자민중을 내몰았다.
21세기판 극우 파시즘의 도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노골적 극우 정치가 같이 펼쳐졌다. 극우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문화전쟁의 일환으로 성소수자 권리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대해 ‘반국가 적대세력’으로 낙인찍고 ‘좌파 척결’이란 기치로 탄압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외 반파시즘 운동단체인 ‘안티파’를 테러단체로까지 지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반이민 정치’도 1기 때보다 더 노골화되었다. ‘이주민이 고유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주민이 복지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라며, 이민자를 국가안보를 해치는 존재로 낙인찍는 전세계 극우의 공통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취임 첫날부터 이주민 추방을 본격화했다. 이민관세단속국(ICE)에 의한 폭력적인 색출, 체포, 추방이 자행되고 있으며, 이민 추방 반대시위에 대해서도 주방위군과 해병대까지 투입하는가 하면, 시위 진압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까지 발생시키는 폭력정치를 펼치고 있다. 가히 21세기 극우 파시즘의 재현이라 부를 만하다.
미국 우선주의의 대외 전략 버전인 ‘돈로 독트린’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파시즘적 통치행위는 전세계를 향한 협박, 강탈, 일방주의, 군사주의는 트럼프 2.0의 대외전략과 밀접히 연결된다. 트럼프 2.0의 대외전략은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과 먼로주의를 결합한 용어로, 트럼프 정부가 2025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탈냉전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먼로주의의 전통을 무시한 과도한 개입이나 이상주의적 접근이라 비판하면서, 탈냉전기 미국 대외정책을 상징하는 ‘글로벌리즘’과 단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과의 단절은 NSS 문서 안에 있는 문장,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전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에서 압축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런 돈로주의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미국의 힘을 서반구, 즉 아메리카 대륙에 집중하겠다는 것
NSS에서는 서반구에서의 미국의 압도적 우위와 미국 본토 방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과 마약 통제 강화, ‘필요시 치명적인 군사력 동원’까지 언급하고 있다. NSS의 하위 문서격으로 올 1월 발표한 국가방위전략(NDS)에서도 “서반구 전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이고 두려움 없이 방어할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는 취임 후 트럼프 정부의 현실 정책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의 안전을 명분으로 한 폭력적인 이민 추방, 멕시코만의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부르기,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장악 시도 등이 그것이다. 중남미 우파를 지원하고 반미/좌파정부를 붕괴하려는 시도도 노골화했다. 작년에는 쿠데타 시도로 기소된 브라질 극우정치인 보우소나루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추라며 브라질에 대해 고율 관세 폭탄을 때리고, 온두라스 선거 개입으로 우파 정치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올 초에는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그 다음의 공격 대상은 쿠바이다. 트럼프는 쿠바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쿠바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석유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국가들에 대한 관세 부과를 명령해, 쿠바에 대한 석유 봉쇄조치를 취하면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유엔도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온갖 패악질로 자신의 뒷마당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1824년 선언된 먼로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 식민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자, 신생 강국으로 커가던 미국이 유럽에 '서반구는 우리 세력권이니 건들지 마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실제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아메리카 전대륙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과 지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힘이 유럽국가들을 압도하면서, 미국의 외교 전략이 '지역 패권'에서 '세계 패권'으로 전환하면서 먼로주의는 쇠퇴한 바 있다. 트럼프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19세기의 먼로주의를 21세 들어 다시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안보 강조
바이든 정부 시기에도 있었던 경제안보의 강조, 즉 ‘경제와 안보의 통합’이라는 시각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주요 공급망 확보, 국내 산업의 재건’을 안보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주요 공급망 특히 안정적 광물 확보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대가로 한 광물협정 체결, 희토류와 리튬 등 주요 광물의 매장량이 많은 중남미와 그린란드에 대한 장악 시도, 관세의 무기화를 통한 주요 동맹국으로부터 미국 내 투자 유치 등을 압박해 냈다. 미중경쟁에서 쇠퇴하는 미국의 경제력을 복원하고 중국과 분리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동맹에 대한 비용 전가 또는 동맹구조의 균열
트럼프 2기는 우선 동맹국에게도 예외없이 약탈적인 관세 압박을 펼쳤다. 또 NSS에서 "동맹은 국방지출을 늘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방어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동맹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동맹국의 국방지출 증액과 역할 확대를 동맹 유지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런 협박의 결과, 나토와 한국 등 동맹국들은 미국 내 투자와 미국산 물품 구매를, 그리고 국방비 대폭 증액에 합의했다. 더욱이 한국은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에 의한 안보 우산이 언제 걷힐 줄 모른다는 동맹국의 우려, 이른바 ‘방기의 위험’를 불러오면서, 미국 중심의 동맹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유럽편을 들지 않고, 유럽연합과 유럽의 정치를 극우적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심지어 나토 동맹국의 땅인 그린란드까지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을 유지시켜 준 ‘대서양 동맹’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다.
다자주의-규칙 기반 질서의 거부
트럼프 2기는 미국 자신이 주도해 만든 세계무역기구와 무역규칙을 무시하면서 고관세 협박으로 각국과 개별적으로 협상, 거래하면서 자국의 이익(투자 유치, 미국산 무기 구매, 국방비 증액 등)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다자주의 자유무역 질서는 파괴되고, 국제통상 환경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도 무너졌다.
미국이 주도해 만든 유엔 등 다자기구의 역할을 불신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면서, 국제협력이 절실한 환경, 보건협력, 빈곤퇴치 등 문제에서 발을 빼면서, UN 기구 35개를 포함해 국제기구 66개에서 탈퇴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도구인 ‘평화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건설하고, 이를 유엔을 대체하는 국제기구로까지 구상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제법과 국제규범과 규칙을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이 전략은 군사력이라는 폭력 행사를 동반한다. 이란 핵시설에 공습, 베네수엘라의 민간선박 격침 및 마두로 납치에 이어,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말하고,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한 군사력 동원 협박까지 벌였다. 마두로 납치 후 백악관 SNS에 올린 “까불면 죽는다(FAFO)”가 상징하듯이 더 이상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천사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힘의 과시를 통해 자신에게 굴복하라고 협박하는 깡패임을 공공연히 표방한다. 이것이 돈로주의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의 실체이다.
돈로주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글로벌리즘으로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우선 서반구에 힘을 집중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확고히 구축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적극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적 힘을 키우고, 이미 중남미 지역의 핵심 무역 대상국이자 투자자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중남미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미국의 서반구에 대한 지배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돈로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 일극(헤게모니)체제의 위기의 반영물이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가주의 세력(미 지배세력 한 분파)의 위기 돌파 전략이다.
둘째, 서반구에 대한 힘의 집중이 ‘고립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NSS에서도 “미국의 이익에 초점을 둔 ‘집중적 해외 참여 전략’”을 밝히고 있는 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력까지 서슴없이 동원하는 ‘선택적 개입주의’를 밝히고 있다. 중동지역에 대한 개입(이란 핵시설 공습,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지원과 가자평화위원회를 통한 자자기구에 대한 식민 지배 야욕),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개입,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 봉쇄를 위해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이는 것 등은 돈로주의가 ‘미국이 세계패권국가의 지위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 아님을 밀해주고 있다. NSS에서도 “지배적인 적의 출현 방지”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미국 힘이 약화된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맹국에 대한 비용 전가를 통해 미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즉 돈로주의는 중국을 향한 이전과 다른 방식의 견제 전략이다.
돈로주의는 세계질서의 급격한 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마가주의, 또는 돈로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국의 정치·경제적 취약성과 패권 쇠퇴의 반영이자, 그 위기감에 대한 반동적 대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 정책의 기준이자 정치적 수사였던 "민주주의의 방어”, "자유의 확장”,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트럼프 2기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다자주의 대신 미국 우선주의에 근거한 일대일 협상이, 규칙과 규범 대신 노골적 협박과 강탈이, 자유나 민주주의 라는 정치적 수사를 걷어치운 노골적인 협박이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시작된 미 일극체제의 위기, 미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를 더욱 가속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악명높은 파시즘 국가, 국제 깡패국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질서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로 미국의 쇠퇴를 모면하려는 트럼프의 전략은 다자주의와 규범·규칙을 파괴하고, 침략을 불사하며, 자신의 위기를 다른 국가들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동맹 균열 정책과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은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간의 군비경쟁을 더욱 촉발하고, ‘방기의 위험’에 처한 나토 회원국의 군비강화 대열에 끌어들이면서 이른바 군사케인스주의를 확산시키고, 전세계적 군비경쟁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실제 올해 2월 5일 만료된 미-러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도 트럼프의 거부로 연장이 불투명해 상태이다.
그러나 미국을 대체할 헤게모니 국가(진영)도 부재한 상황이다. 결국 돈로주의가 불러온 세계정세는 2010년대부터 시작한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지역 강국들(인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의 치열한 실리외교가 진행되면서, 무질서와 혼란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의 무기화, 침략 전쟁, 전세계 군비경쟁의 격화 등으로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세계정세의 변동을 놓고 1차 세계대전 전야에 제국주의론을 쓴 레닌이 소환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복원이 대안인가
돈로주의를 놓고, 주류의 시각은 ‘제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한다. 트럼프에 의해 파괴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다시 복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이 ‘세계경찰국가’로서, 다시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미일극체제의 복원(패권 안정론)이다.
그러나 이 시각은 미국이 이전에도 제국주의 국가였음을 망각하는 것이며, 미국이 주도해서 세운 자유주의 질서가 철저히 미국의 이익(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 독점자본)을 위해 세워지고 운영된 것임을 기각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세계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심화했다는 점 또한 지우는 것이다. 물론 자유주의 질서가 돈로주의의 폭력성과 일방주의보다는 낫다. 일방주의가 아니라 다자주의가, 폭력이 아닌 규칙이 세계질서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자주의와 규칙이 누구를 위한 규칙이고 다자주의인가가 중요하다. 패권국을 위한 위한 규칙과 다자주의가 세계질서의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위해 주변부와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수탈, 착취해온 패권의 질서라는 점에서,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정치적 수사로 감싼 ‘우아한 위선’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 돈로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트럼피즘의 토대가 노동자와 민중을 삶의 위기로 내몬 자유주의 정치에 대중적 반발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돈로주의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땅에 떨어진 이상, 미일극체제 복원의 가능성도 현실에서 더욱 멀어졌다.
대안은 다극화인가?
위 입장과 상반되는 입장이 ‘다극화’론이다. 돈로주의로 다극화 경향이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다극화가 세계의 진보를 가져오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돈로주의로 미 일극체제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중국-러시아 중심의 ‘다극화’ 추진 세력들이 세계질서를 ‘진보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은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안정적으로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적 리더십이 없으며, 일국 차원에서 보더라도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미’만을 기치로 할 뿐,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지향을 갖고 있지 않는 다극화는 세계질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욱이 ‘극’이라는 개념 자체가 강대국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세계 지배를 두고 경쟁하는 지배계급 간의 재편에 불과할 수 있다.
마가주의와 돈로주의는 자유주의 질서의 붕괴 위험이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극우세력에 의해 반동적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이는 전세계 좌파·사회주의운동의 취약한 역량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돈로주의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지고 있다. ‘사회주의냐-야만이냐’를 어떻게 현 시대의 화두로 만들 것인지, 사회주의를 대안적 비전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를 위해 좌파·사회주의운동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