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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퀴어[리뷰&에세이] 학생운동, 은퇴합니다! by 조민

편집부
2025-09-30
조회수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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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생운동 은퇴자 조민입니다.

학생운동 은퇴라니, 참신한 조어이죠. 전향을 한 것은 아니고, 나이가 차서 은퇴했습니다.

 9월부터 일본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새내기 때부터 전념해온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새인생 새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은퇴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송별회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봅니다. 무엇보다 은퇴식의 형식을 빌리는 것이 (이후의 사회운동을 전제하는)돌잔치와 (학생운동 생활의 종결을 의미하는)장례식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기획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뜸 학내의 친구들에게 '8월 15일에 학생운동 은퇴식 하겠습니다'라는 공지를 띄우고(?) 사회학과의 모 학우를 조직위원장으로 지명(?)하였습니다. 이후 자체적으로 구체화된 조직위원회는, 제게 '저희 요구에 뭐든 응하는 거죠?'라는 부당한 계약의 뉘앙스를 뿜는 연락들을 해왔습니다. '무슨 요구요?'라는 저의 질문엔 '조직위의 정당한 요구.'라는 말이 돌어왔습니다. 그래도 학우들을 믿으며 조직위의 자체적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사실 '제 은퇴식인데 제가 왕이죠~'라고 한번 뻐팅겼습니다)하며 은퇴자의 강연 시간 한 시간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자 조직위는 돌연 '사람들이 잘 것이다', '집에 갈 것이다'라며 훼방을 놓았습니다. 무수한 상호비난을 거치며 '나는 8시간도 할 수 있는데 참석자들을 배려해 1시간으로 압축한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과 함께 1시간 강연 시간을 관철해내었습니다.

 잡일들은 조직위에 맡기고, 저는 행사 포스터와 강연 준비에 열중했습니다. 마지막 공적 말하기인만큼 사회생활과 정치적 고려를 억제하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저의 일생부터, 제가 사회운동을 접한 계기, 그때의 정세인식... 청소년운동의 기억들과 선거운동의 경험들을 가감없이 전하고, 학생운동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제 평소 고민들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PPT까지 만들며 강연 준비를 마치고 전위적인 행사 포스터까지 완성했습니다.

 당일이 되어, 쿠팡 파업결의대회를 마치고 학교 모처, 조직위가 대관한 강의실에 도착하자 조직위원장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며 저를 쫓아내었고, '조직위가 부를 때까지 안을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은퇴식의 주인공은 복도를 서성이며 조직위의 부름을 기다리는 기이한 현상도 잠시, 시간이 되어 입장하자 이북식 선전 현수막과 TV모니터가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조직위가 주문 제작한 '조민 학생운동 기념'수건이 답례품으로 준비된 것을 보았을 땐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10명 가량의 학우들이 제 학생운동 은퇴를 축하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공유하기 위해 자리해주셨습니다. 소식지의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다행히 강연은 제 시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발표할 때 듣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살피기 때문에… 그래도 1시간은 넘겼습니다. 

 제 강연을 마친 후, 《조민 퀴즈대회》가 있었습니다. 조직위와 제가 엄선한 퀴즈들을 참가자들이 풀었습니다. 퀴즈대회 1등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학우에게는 제가 독일 트리어에서 공수한 맑스 0유로 지폐를 부상으로 수여했습니다.  

 이후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축전과 축사를 참석자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아쉽게도 당에서 온 것은 없었습니다. 축사에 대한 저의 답사를 나누고, 돌잡이를 진행했습니다. ‘돌잡이도 할까?‘라는 말을 제가 장난삼아 하긴 했었는데요, 산별노조 머리띠들을 올려두고 그 중에 손에 잡히는 산업에 종사하겠다는, 운동을 희화화하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제 앞에 놓인 것은 (마패와 붓 등등이 놓인)진짜 돌잔치 세트였습니다…

 왜 진짜 돌잡이를 해야 하냐고 항변했더니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당신은 운동가로서 사망한 것이고 인간으로 새생명을 얻은 것이다’라는 해괴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그냥 잡으면 안되고 코끼리코 열바퀴를 돌고 잡으라는 조직위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아가 있는 조민을 순수한 시절로 되돌리는 방법이라면서요. 

 오랜만에 도는 코끼리코는 생각보다 어지러웠습니다. 겨우 넘어지지 않고 마패를 집었더니 ‘폭력경찰이 되기 위해 마패를 잡았다‘는 환호가 들렸습니다.

갈수록 힘이 빠지는 은퇴식은 제가 폭력경찰 유망주가 되는 결말로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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