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네? 노래를 부르라고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GV 게스트 하는 줄 알고 온 상영회, 시작 한 시간 전에 대뜸 노래를 부르라니…주위를 둘러보니 젬베에 마라카스에 온갖 악기들이 이미 다 준비가 돼있는 것이었다. 안 하겠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
“까짓거 한 번 해보죠.”
눈 앞이 캄캄해졌다.
# 2
9월 17일 전국 동시다발로 열린 기후정의영화제 <바로 지금 여기> 상영회, 내가 살고 있는 관악동작에서도 열리게 됐다. 노동당 관악동작지역위 당원들(성소위 운영위 다수 포함)과 녹색당원들이 함께 “관악동작적록모임” 이름을 걸고 관악동작 지역에서 상영회를 열게 됐다. GV 게스트는 관악구 주민이고, <바로 지금 여기> 출연자이기도 한 녹색당의 청연님이 맡아주셨는데, GV 게스트를 한 명 더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에게도 제안이 오게 됐다. 무려 영화 출연자와 함께 게스트를 하게 되다니…내가 뭐라고…살떨리는 기분이었지만 선뜻 수락하긴 했다. 일단은 관악동작 주민이고(이사온 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기후정의 활동가이긴 하니까…
# 3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밖에서 급하게 노래 연습을 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무대 앞 게스트석에 앉았다. 물컵을 따로 들고 들어갔는데, 들어가보니까 이미 생수병이 세팅되어있어서 조금 뻘쭘했다…
시간의 문제로 GV는 다소 짧게 진행됐다. 말이 관악동작 지역의 기후정의 활동가지, 사실 기후활동을 주로 한 건 충남이기 때문에 충남 이야기만 줄창 하다가 내려왔다. 내용만 들어보면 이게 관악동작기후정의영화제인지, 서산태안기후정의영화제인지…하지만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체제전환이 기후정의운동의 가장 큰 화두인 이 시점에서, 충남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실 그거 말고는 내가 아는 게 없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ㅜㅜ
# 4
나도 직장 때문에 지역을 떠난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주제이지만, 충남 지역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지역소멸”이다. 2023년 기준 충남 소재 대학교의 전체 재학생 수는 16만 명이 넘는다. 이는 서울, 경기, 부산, 경북 다음으로 많은 수치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다섯 번째로 대학생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충남에서도 지역소멸이 지역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지역에 정착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청년들이 적다는 뜻일 거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서 장기적인 삶의 전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전망은 지역의 기반에서 나오는데, 나는 기반이란 결국 ‘산업’과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 주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재화와 상품을 생산하고, 재화와 상품이 주민들을 매개로 하여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한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 5
충남의 ‘기반 상실’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을까? 농업 홀대의 문제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위기 역시 충남의 지역소멸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뚱딴지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며 석탄화력발전은 재생에너지로, 가솔린 차량은 전기차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충남 공단지대의 주요 산업들은 발전산업과 자동차 제조업, 또는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크게 받는 제철산업이다.
충남 서부권의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지금 대규모 폐쇄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하청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이다. 화력발전소 폐쇄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발전사 그 누구도 이들의 고용승계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제조업 또한 마찬가지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 수가 훨씬 적고, 차체의 경량화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이 이뤄질 경우 부품 제작을 수주받는 하청사들의 수는 대폭 줄어들 것이며, 이는 충남 북부 공단지대 부품사들의 줄폐업과 하청 노동자 다수의 실직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부품사의 폐업과 차체 경량화 작업으로 인해 제철소의 물량 수주 또한 축소될 것이며, 이러한 타격은 제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실직은 곧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하는 재화가 급격하게 축소됨을 의미한다. 그 다음 타깃은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될 것이다. 인구 유출은 심각해질 것이며,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 역시 정착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졸업 이후 충남을 바로 떠나게 될 것이다. 이미 소멸 고위험 지역인 태안과 위험지역인 당진, 서산, 보령 등은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고, 소멸 위험지역은 아니나 부품사가 밀집되어 있는 천안, 아산도 무시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전환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대책 없는 산업 전환은 기후 위기가 불러일으킨 재앙이 될 것이다.
# 6
폐쇄를 앞둔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발전소 폐쇄 반대'가 결코 아니다. 발전산업의 전환과 이에 수반되는 화력발전소의 폐쇄는 필연임을 받아들이고 이에 동의한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정든 일터를 폐쇄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지역 그리고 지구 공동체의 뭇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대신 이들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소 폐쇄와 산업전환을 받아들이되 산업전환에 따른 재교육과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고용 문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결국 그 후유증은 도미노처럼 모두를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기후정의영화제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말로 잘 풀어낸 이야기들도, 시간이 없어 미처 못한 이야기도 있지만 다음에 또 지역의 기후정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 7
한 시간 연습한 것치고는 노래는 나름 잘 불렀다. 927 기후정의행진 함께 참석하자는 이야기로 영화제는 화기애애하게 잘 마무리됐다. 영화제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시원 운영위원과 케이 위원장 동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에 불러주시면 노래공연도 생각해보겠습니다…아마도…
[이 글은 과거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갈무리하여 작성되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12960
# 1
“네? 노래를 부르라고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GV 게스트 하는 줄 알고 온 상영회, 시작 한 시간 전에 대뜸 노래를 부르라니…주위를 둘러보니 젬베에 마라카스에 온갖 악기들이 이미 다 준비가 돼있는 것이었다. 안 하겠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
“까짓거 한 번 해보죠.”
눈 앞이 캄캄해졌다.
# 2
9월 17일 전국 동시다발로 열린 기후정의영화제 <바로 지금 여기> 상영회, 내가 살고 있는 관악동작에서도 열리게 됐다. 노동당 관악동작지역위 당원들(성소위 운영위 다수 포함)과 녹색당원들이 함께 “관악동작적록모임” 이름을 걸고 관악동작 지역에서 상영회를 열게 됐다. GV 게스트는 관악구 주민이고, <바로 지금 여기> 출연자이기도 한 녹색당의 청연님이 맡아주셨는데, GV 게스트를 한 명 더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에게도 제안이 오게 됐다. 무려 영화 출연자와 함께 게스트를 하게 되다니…내가 뭐라고…살떨리는 기분이었지만 선뜻 수락하긴 했다. 일단은 관악동작 주민이고(이사온 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기후정의 활동가이긴 하니까…
# 3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밖에서 급하게 노래 연습을 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무대 앞 게스트석에 앉았다. 물컵을 따로 들고 들어갔는데, 들어가보니까 이미 생수병이 세팅되어있어서 조금 뻘쭘했다…
시간의 문제로 GV는 다소 짧게 진행됐다. 말이 관악동작 지역의 기후정의 활동가지, 사실 기후활동을 주로 한 건 충남이기 때문에 충남 이야기만 줄창 하다가 내려왔다. 내용만 들어보면 이게 관악동작기후정의영화제인지, 서산태안기후정의영화제인지…하지만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체제전환이 기후정의운동의 가장 큰 화두인 이 시점에서, 충남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실 그거 말고는 내가 아는 게 없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ㅜㅜ
# 4
나도 직장 때문에 지역을 떠난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주제이지만, 충남 지역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지역소멸”이다. 2023년 기준 충남 소재 대학교의 전체 재학생 수는 16만 명이 넘는다. 이는 서울, 경기, 부산, 경북 다음으로 많은 수치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다섯 번째로 대학생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충남에서도 지역소멸이 지역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지역에 정착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청년들이 적다는 뜻일 거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서 장기적인 삶의 전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전망은 지역의 기반에서 나오는데, 나는 기반이란 결국 ‘산업’과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 주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재화와 상품을 생산하고, 재화와 상품이 주민들을 매개로 하여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한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 5
충남의 ‘기반 상실’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을까? 농업 홀대의 문제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위기 역시 충남의 지역소멸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뚱딴지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며 석탄화력발전은 재생에너지로, 가솔린 차량은 전기차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충남 공단지대의 주요 산업들은 발전산업과 자동차 제조업, 또는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크게 받는 제철산업이다.
충남 서부권의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지금 대규모 폐쇄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하청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이다. 화력발전소 폐쇄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발전사 그 누구도 이들의 고용승계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제조업 또한 마찬가지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 수가 훨씬 적고, 차체의 경량화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이 이뤄질 경우 부품 제작을 수주받는 하청사들의 수는 대폭 줄어들 것이며, 이는 충남 북부 공단지대 부품사들의 줄폐업과 하청 노동자 다수의 실직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부품사의 폐업과 차체 경량화 작업으로 인해 제철소의 물량 수주 또한 축소될 것이며, 이러한 타격은 제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실직은 곧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하는 재화가 급격하게 축소됨을 의미한다. 그 다음 타깃은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될 것이다. 인구 유출은 심각해질 것이며,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 역시 정착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졸업 이후 충남을 바로 떠나게 될 것이다. 이미 소멸 고위험 지역인 태안과 위험지역인 당진, 서산, 보령 등은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고, 소멸 위험지역은 아니나 부품사가 밀집되어 있는 천안, 아산도 무시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전환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대책 없는 산업 전환은 기후 위기가 불러일으킨 재앙이 될 것이다.
# 6
폐쇄를 앞둔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발전소 폐쇄 반대'가 결코 아니다. 발전산업의 전환과 이에 수반되는 화력발전소의 폐쇄는 필연임을 받아들이고 이에 동의한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정든 일터를 폐쇄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지역 그리고 지구 공동체의 뭇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대신 이들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소 폐쇄와 산업전환을 받아들이되 산업전환에 따른 재교육과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고용 문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결국 그 후유증은 도미노처럼 모두를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기후정의영화제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말로 잘 풀어낸 이야기들도, 시간이 없어 미처 못한 이야기도 있지만 다음에 또 지역의 기후정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 7
한 시간 연습한 것치고는 노래는 나름 잘 불렀다. 927 기후정의행진 함께 참석하자는 이야기로 영화제는 화기애애하게 잘 마무리됐다. 영화제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시원 운영위원과 케이 위원장 동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에 불러주시면 노래공연도 생각해보겠습니다…아마도…
[이 글은 과거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갈무리하여 작성되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12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