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머리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었다. 8월 1일 발효 예정이던 한국에 대한 25%의 ‘상호관세’ 부과조치가 시행되기 이틀 전에 타결된 것인데, 핵심적인 내용은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최대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내 투자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협상 결과에 대해 정부나 언론 및 여론 등은 대체로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나 EU 등 대미수출 경쟁국가와 동일한 15%의 관세율에 합의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불리해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 이런 평가의 제일 큰 요인일 것이다. 물론 이번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상당수가 인정하고 있다. 상호관세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대미국 수출품에는 15%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미국의 대한국 수출폼은 여전히 무관세로 유지된다는 점이나, 한국이 자금을 제공함에도 미국이 투자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문제 등 그간의 국제 통상규범에서 벗어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보하면서 불공정 협상을 강요하는 방식 또한 상식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 내지 트럼프의 패권주의적인 횡포만을 문제삼으면서,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미국 입장에 끌려갔지만 나름 선방한 것이므로 비판은 미국과 트럼프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한국 정부나 자본은 단지 ‘피해자’일 뿐이며 미국의 횡포만이 우리가 문제삼고 비판해야 할 사안인가? 본 글은 이번 협상이 단순히 그런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음을 살펴볼 것이다. 물론 미국이 그간의 국제 통상규범을 무시한 일방적인 횡포를 부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도 이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업 같이 그동안 대미투자가 없거나 적었던 한국 자본은 이번 협상을 기화로 대미 직접투자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국내의 산업투자 및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투자 실패의 리스크를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 더 정확히는 한국 국민 모두가 함께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이번 협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한국 자본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점임에도, 이런 계급적 시각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한미 간의 민족 내지 국가 간 갈등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문제의 본질을 상당 부분 가린다. 이에 한미 관세협상의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한미 관세협상의 과정과 결과
올해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트럼프는 관세율을 주된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월 4일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3월 4일에는 중국에 다시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국경보안과 펜타닐 등을 이유로 북미 자유무역협정에도 불구하고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중국에 대한 관세는 추가 인상 협박과 희토류 수출통제 등 중국의 보복 조치 및 이에 따른 추가 인상 유예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는 30% 수준으로 부과되고 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와도 현재 캐나다 35% 및 멕시코 30%의 관세가 부과된 상태에서 (다만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품목은 예외임) 각 나라별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일부 국가만을 먼저 표적으로 삼았지만 4월 5일에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서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기로 하였고, 4월 9일에는 역시 전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대미 무역수지 등을 감안한 국가별 개별 관세를 ‘상호관세’라는 명목으로 부과하였다. 다만 이 상호관세는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유예를 거쳐 8월 1일부터 발효하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며 이에 따라 상당수의 국가들은 7월 중에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물론 이는 나라마다 대응 수준이 제법 달라서 중국처럼 협상에서 상당 부분 버티고 있는 나라들도 있으며 그 외의 많은 나라들 역시 협상을 계속하되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이런 국가별 상호관세와는 별개로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품목별 관세가 별도로 부과되었다. 3월 12일 철강과 알루미늄 및 관련 제품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6월 3일에는 이를 50%로 인상하였고, 이는 현재도 적용 중이며 최근에는 관련 제품의 범위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자동차 역시 4월 3일에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이 역시 현재도 유지 중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후술할 국가별 협상에서 한국, 일본, EU 등과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하였지만 아직 실제로 인하되지는 않고 여전히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의 일방적 부과에 대응하여, 많은 나라들이 8월 1일료 예정된 상호 관세 발효일 전에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먼저 합의를 완료하였으나 이들은 오히려 대미 무역적자이거나(영국) 흑자라도 그 규모 또는 산업적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도 크고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한국과 일본, EU 등과의 협상 결과였는데, 이 중 일본이 먼저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의 주된 내용은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일본이 미국에 최대 5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EU와도 합의에 이르렀는데 역시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EU가 최대 60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EU가 합의에 도달한 이후 한국도 7월 30일에 글머리에 말한 합의에 도달했다. 일본과 EU와 비슷하게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최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 외에도 미국산 LNG 등 에너지 강매 및 상호관세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수출품에는 무관세를 적용한다는 조항 등이 한국, 일본, EU와의 협상에 공히 추가되었다.
협상에서 합의된 한국의 대미 투자는 두 부문으로 나뉘는데, 1500억 달러는 조선산업과 관련된 투자이다. 미국의 조선산업은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붕괴 상태이다.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능력이 없어서, 미국이 강매한 LNG를 운반할 LNG 운반선조차 만들기 어렵다. 군함 역시 건조 능력은 남아있지만 유지 및 정비 기술이 뒤떨어져 작전 수행 능력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는데, 중국을 견제하고 글로벌 해상 패권을 유지하려면 미국 군함의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트럼프 역시 미국 조선산업의 부활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하므로, 한국은 이 부분을 대미 협상의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조선산업 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일본의 5500억 달러와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될 듯하다. 미국에 최대 2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서 여기에 한국이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금액을 전부 실제로 투자하는 것은 아니고, 그 중 일부만이 지분 투자 형식으로 실제로 자본을 투자하고 나머지 금액은 한국 정부 내지 국책 금융기관이 해당 펀드에 대출을 해주거나 다른 민간기업의 대출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자본투자가 얼마 정도 될 것인가 내지 대출과 지급보증이 각각 어느 정도가 될지 등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것은 이후 추가로 협상해야 할 내용이다. 한편 이상의 3500억 달러와는 별도로 한국 민간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는 순수한 민간투자이므로 한국 정부와 국책 금융기관이 투자 및 대출과 보증 등의 주체로 함께 참여하는 3500억 달러와는 성격이 다른데, 이런 민간투자의 규모가 얼마가 될 지는 역시 추가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트럼프는 이러한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 해당 투자와 관련된 운영 및 수익 등을 미국이 보유하고 통제한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은 약간은 트럼프의 자국 내 선전용인 측면도 있다. 1500억 달러의 조선산업 투자나 나머지 2000억의 펀드 투자와 관련해서 운영이나 수익 배분이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역시 추가로 협의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산업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좀 더 투자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하다. 투자 분야가 정해져 있거니와, 기술이나 숙련 노하우 등에서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반면 최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펀드의 경우에는 투자 분야 결정 등 펀드의 운영 면에서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즉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주로 결정하는 투자에 한국은 자금만 제공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물론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실제 자본 투자가 아니라 대출이나 지급보증 형식이겠지만, 투자 실패 및 펀드 부실화 등의 리스크는 결국 한국 정부 및 국책 금융기관 등이 함께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실제 투자 지분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출금을 못 받거나 지급보증 때문에 대신 지급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와 한국의 대응 평가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이번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정말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내지 완화 등 이번 사안을 무역 문제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상호관세나 품목관세 등 관세율 자체가 얼마로 정해지는가 등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미국과 트럼프에게 있어서 관세율은 협상 내지 협박의 무기일 뿐 그 자체가 핵심 목적이 아니다. 사실 관세는 양날의 칼이며 조금만 길게 보면 미국에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고율의 관세는 결국은 미국 내의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안긴다. 또한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보복 관세나 수출입 통제 등 그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미국 기업이나 생산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미국 내에서조차 학계나 정관계의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우려한 이유이며, 이들은 애초에 트럼프식의 일방적인 관세 무기화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트럼프도 이를 알고 있다. 그에게 관세는 막대한 미국 시장을 담보로 한 일종의 협박 수단인 측면이 훨씬 강하고 언제든지 유예나 변경 등이 가능한 것이다.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무역적자 해소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요 협상 상대국과는 미국에게도 결국은 좋지 않은 고율 관세를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 같은 경우 한때 110%의 관세 부과를 엄포했다가 현재는 30% 수준의 관세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계속하고 잇으며, 캐나다나 멕시코의 경우에도 형식적으로는 30~35%의 관세라지만 글머리에 언급했듯이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원산지 규정을 만족하는 상당수 품목에 대해서는 무관세 내지 저율 관세를 적용하기 때문에 평균 실효세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지금보다 더 낮추어질 가능성도 크다. 또한 한국, 일본, EU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과는 원래 예고했던 25%의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이미 합의했다.
즉 관세를 빌미로 협상과정에서 다음을 얻어내려는 것이 미국의 주된 목적이다. 캐나다나 멕시코 등 국경을 맞닿고 있는 나라의 경우 불법 입국자나 펜타닐 문제 등 국경 보안 강화가 주목적이며, 한국과 일본 및 EU 등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대미 투자 여력이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이런 미국의 의도는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및 EU 등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 내에서도 일방적인 관세전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는 상대방이 미국의 의도대로 굴복하지 않고 일정하게 버틸 경우 결국은 미국의 소비자나 생산자에게도 물가 인상이나 수출 감소 등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희토류 수출통제 등으로 나름 버티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교역 규모가 커서 미국에게도 피해가 바로 발생하는 캐나다 및 멕시코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 및 EU 등의 국가는 대미 수출 감소로 미국 소비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당장의 피해가 더 두려워서 미국과의 협상을 빨리 끝내면서 미국 내 직접투자 확대라는 미국의 주된 목표에 호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였고 EU가 뒤따랐으며 한국은 셋 중에는 제일 늦게 합의에 이르렀지만, 어차피 공동 대응 등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 며칠의 시간 차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세율은 단순히 미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요 수출품목 등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경쟁 국가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유불리 여부도 중요하므로, 대미 무역 구조가 비슷한 세 곳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좀 더 유리한 조건을 먼저 따낼 경우 다른 국가도 비슷한 조건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잘 따져보자면, 고율의 관세 부과가 우리나라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일종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좀 더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면 협상을 이렇게 빨리 끝낼 이유가 별로 없었다.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25%의 상호관세가 실행되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는 향후 3~4년간 500억~600억 달러 정도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런 고율 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경쟁 국가인 일본이나 EU가 먼저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공동 대응을 한 경우보다는 우리가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8월 1일이라는 시한에 목매지 말고 중국이나 캐나다 및 멕시코처럼 협상을 더 끄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향후 3~4년간 누적하더라도 500억~600억 달러 정도인 피해를 좀 더 줄이기 위해, 누적 피해액의 6~7배에 달하는 대미 직접투자를 약속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왜 협상 타결을 서둘렀을까? 여기에 이번 관세협상의 또다른 중요한 측면이 숨겨져 있다 (이는 일본이나 EU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이번 관세협상은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한국 등의 정부나 자본이 무조건 당하기만 한 것이 전혀 아니다. 물론 기존의 국제 통상규범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한 미국과 트럼프가 심각한 횡포를 부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국 자본이나 총자본으로서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를 일종의 새로운 이윤 창출 기회라고 바라보고 대응한 측면도 틀림없이 있다.
트럼프의 주목적인 미국 내 제조업 부활에 호응한다는 명분 하에 미국 내 직접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광대한 소비시장과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자본이 그간의 위치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피해추정액의 몇 배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협상을 빨리 끝낸 것이며 이는 일본이나 EU 역시 마찬가지다. 형식상 관세 협상의 외피를 두름으로써 얼핏 보기에는 한국, 일본, EU 대 미국이라는 국가 간 대립구도로 보이지만, 한국 등의 입장에서도 자본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결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미국의 횡포만을 강조하는 상당수 시각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거니와, 이는 국가 내지 민족 간 대립을 우선적으로 생각함으로써 국내 자본과의 일정한 협력 등 민족주의적 우경화로 흐를 위험성이 상당하다. 한국 자본은 결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며 과거 식민지 시기의 이른바 ‘민족자본’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 자본은 언제든지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도약하려고 기회를 노리는 쪽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조선산업에 대한 1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약속 등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번 협상의 진정한 피해자는 한국 자본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다. 이는 대미 투자에 동반되는 두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로 자본의 투자 여력이라는 것이 한도가 있으므로 대규모의 대미 투자에 집중하다 보면, 국내의 산업투자는 아무래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의 일자리나 노동조건 등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노동은 자본처럼 쉽게 이동할 수 없으므로, 이는 한국 내의 노동자민중에게 훨씬 큰 피해를 입힌다.
둘째, 보다 심각한 것은 대미 투자가 단순히 순수한 민간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에는 원래 리스크가 따르거니와, 특히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더욱 그렇다. 고비용의 문제나 숙련 노동력의 문제 등 미국 제조업의 기반 자체가 상당 정도 붕괴되었기에, 단지 대규모 직접투자만으로 미국 제조업이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은 별로 없다. 미국 경제 전체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체가 과거와 같은 번영을 다시 이루기는 극히 어려운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순수한 민간투자라면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해당 민간자본의 손실로 그치지만, 이번 대미 투자 약속처럼 정부 내지 국책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지급보증 등이 동반될 경우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은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 전체 더 정확히는 한국 노동자민중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결국 투자가 성공하면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고, 투자가 실패해도 그 실패에 따른 부담은 자본만이 아니라 정부와 노동자민중 전체가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는 자본의 논리에 적극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순수 민간투자에 비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기에,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음에도 경제적 공포를 조장하면서 협상을 빨리 끝낸 것이다. 진정한 적대는 한국과 미국 간의 적대가 아니라 한미의 자본 대 노동자민중 간의 적대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론
이상으로 한미 관세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면서 미국의 의도와 그에 대한 한국의 대응도 일정하게 평가해보았다. 이미 강조한 대로 현재의 관세협상을 단지 국가 간 관세율 협상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 이는 미국의 주목적을 오히려 가리게 되거니와, 한국 자본이 이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는 측면을 무시하게 된다. 또한 자본이 책임저야 할 투자 리스크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함께 책임지게 되며, 국내의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경시하도록 만든다.
진정한 피해자가 누구이며 적대의 전선이 실제로 어디에서 형성되는가를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추후 예상되는 노동자민중의 피해에 대해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진행된 협상 결과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번 협상 결과는 아쉽지만 선방한 것이라는 식의 손쉬운 평가에서 벗어나서 이후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대미 직접 투자가 아니라 국내의 산업과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이 우선되도록 해야 하며, 투자 실패의 리스크를 자본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대항해서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 또한 강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트럼프 식의 미봉책이 아니라 노동과 상호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대안적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갈 때만이 극복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머리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었다. 8월 1일 발효 예정이던 한국에 대한 25%의 ‘상호관세’ 부과조치가 시행되기 이틀 전에 타결된 것인데, 핵심적인 내용은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최대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내 투자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협상 결과에 대해 정부나 언론 및 여론 등은 대체로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나 EU 등 대미수출 경쟁국가와 동일한 15%의 관세율에 합의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불리해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 이런 평가의 제일 큰 요인일 것이다. 물론 이번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상당수가 인정하고 있다. 상호관세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대미국 수출품에는 15%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미국의 대한국 수출폼은 여전히 무관세로 유지된다는 점이나, 한국이 자금을 제공함에도 미국이 투자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문제 등 그간의 국제 통상규범에서 벗어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보하면서 불공정 협상을 강요하는 방식 또한 상식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 내지 트럼프의 패권주의적인 횡포만을 문제삼으면서,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미국 입장에 끌려갔지만 나름 선방한 것이므로 비판은 미국과 트럼프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한국 정부나 자본은 단지 ‘피해자’일 뿐이며 미국의 횡포만이 우리가 문제삼고 비판해야 할 사안인가? 본 글은 이번 협상이 단순히 그런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음을 살펴볼 것이다. 물론 미국이 그간의 국제 통상규범을 무시한 일방적인 횡포를 부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도 이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업 같이 그동안 대미투자가 없거나 적었던 한국 자본은 이번 협상을 기화로 대미 직접투자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국내의 산업투자 및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투자 실패의 리스크를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 더 정확히는 한국 국민 모두가 함께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이번 협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한국 자본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점임에도, 이런 계급적 시각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한미 간의 민족 내지 국가 간 갈등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문제의 본질을 상당 부분 가린다. 이에 한미 관세협상의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한미 관세협상의 과정과 결과
올해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트럼프는 관세율을 주된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월 4일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3월 4일에는 중국에 다시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국경보안과 펜타닐 등을 이유로 북미 자유무역협정에도 불구하고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중국에 대한 관세는 추가 인상 협박과 희토류 수출통제 등 중국의 보복 조치 및 이에 따른 추가 인상 유예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는 30% 수준으로 부과되고 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와도 현재 캐나다 35% 및 멕시코 30%의 관세가 부과된 상태에서 (다만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품목은 예외임) 각 나라별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일부 국가만을 먼저 표적으로 삼았지만 4월 5일에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서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기로 하였고, 4월 9일에는 역시 전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대미 무역수지 등을 감안한 국가별 개별 관세를 ‘상호관세’라는 명목으로 부과하였다. 다만 이 상호관세는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유예를 거쳐 8월 1일부터 발효하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며 이에 따라 상당수의 국가들은 7월 중에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물론 이는 나라마다 대응 수준이 제법 달라서 중국처럼 협상에서 상당 부분 버티고 있는 나라들도 있으며 그 외의 많은 나라들 역시 협상을 계속하되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이런 국가별 상호관세와는 별개로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품목별 관세가 별도로 부과되었다. 3월 12일 철강과 알루미늄 및 관련 제품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6월 3일에는 이를 50%로 인상하였고, 이는 현재도 적용 중이며 최근에는 관련 제품의 범위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자동차 역시 4월 3일에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이 역시 현재도 유지 중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후술할 국가별 협상에서 한국, 일본, EU 등과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하였지만 아직 실제로 인하되지는 않고 여전히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의 일방적 부과에 대응하여, 많은 나라들이 8월 1일료 예정된 상호 관세 발효일 전에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먼저 합의를 완료하였으나 이들은 오히려 대미 무역적자이거나(영국) 흑자라도 그 규모 또는 산업적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도 크고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한국과 일본, EU 등과의 협상 결과였는데, 이 중 일본이 먼저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의 주된 내용은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일본이 미국에 최대 5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EU와도 합의에 이르렀는데 역시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EU가 최대 60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EU가 합의에 도달한 이후 한국도 7월 30일에 글머리에 말한 합의에 도달했다. 일본과 EU와 비슷하게 상호관세율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최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 외에도 미국산 LNG 등 에너지 강매 및 상호관세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수출품에는 무관세를 적용한다는 조항 등이 한국, 일본, EU와의 협상에 공히 추가되었다.
협상에서 합의된 한국의 대미 투자는 두 부문으로 나뉘는데, 1500억 달러는 조선산업과 관련된 투자이다. 미국의 조선산업은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붕괴 상태이다.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능력이 없어서, 미국이 강매한 LNG를 운반할 LNG 운반선조차 만들기 어렵다. 군함 역시 건조 능력은 남아있지만 유지 및 정비 기술이 뒤떨어져 작전 수행 능력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는데, 중국을 견제하고 글로벌 해상 패권을 유지하려면 미국 군함의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트럼프 역시 미국 조선산업의 부활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하므로, 한국은 이 부분을 대미 협상의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조선산업 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일본의 5500억 달러와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될 듯하다. 미국에 최대 2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서 여기에 한국이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금액을 전부 실제로 투자하는 것은 아니고, 그 중 일부만이 지분 투자 형식으로 실제로 자본을 투자하고 나머지 금액은 한국 정부 내지 국책 금융기관이 해당 펀드에 대출을 해주거나 다른 민간기업의 대출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자본투자가 얼마 정도 될 것인가 내지 대출과 지급보증이 각각 어느 정도가 될지 등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것은 이후 추가로 협상해야 할 내용이다. 한편 이상의 3500억 달러와는 별도로 한국 민간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는 순수한 민간투자이므로 한국 정부와 국책 금융기관이 투자 및 대출과 보증 등의 주체로 함께 참여하는 3500억 달러와는 성격이 다른데, 이런 민간투자의 규모가 얼마가 될 지는 역시 추가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트럼프는 이러한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 해당 투자와 관련된 운영 및 수익 등을 미국이 보유하고 통제한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은 약간은 트럼프의 자국 내 선전용인 측면도 있다. 1500억 달러의 조선산업 투자나 나머지 2000억의 펀드 투자와 관련해서 운영이나 수익 배분이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역시 추가로 협의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산업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좀 더 투자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하다. 투자 분야가 정해져 있거니와, 기술이나 숙련 노하우 등에서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반면 최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펀드의 경우에는 투자 분야 결정 등 펀드의 운영 면에서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즉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주로 결정하는 투자에 한국은 자금만 제공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물론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실제 자본 투자가 아니라 대출이나 지급보증 형식이겠지만, 투자 실패 및 펀드 부실화 등의 리스크는 결국 한국 정부 및 국책 금융기관 등이 함께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실제 투자 지분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출금을 못 받거나 지급보증 때문에 대신 지급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와 한국의 대응 평가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이번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정말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내지 완화 등 이번 사안을 무역 문제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상호관세나 품목관세 등 관세율 자체가 얼마로 정해지는가 등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미국과 트럼프에게 있어서 관세율은 협상 내지 협박의 무기일 뿐 그 자체가 핵심 목적이 아니다. 사실 관세는 양날의 칼이며 조금만 길게 보면 미국에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고율의 관세는 결국은 미국 내의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안긴다. 또한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보복 관세나 수출입 통제 등 그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미국 기업이나 생산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미국 내에서조차 학계나 정관계의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우려한 이유이며, 이들은 애초에 트럼프식의 일방적인 관세 무기화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트럼프도 이를 알고 있다. 그에게 관세는 막대한 미국 시장을 담보로 한 일종의 협박 수단인 측면이 훨씬 강하고 언제든지 유예나 변경 등이 가능한 것이다.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무역적자 해소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요 협상 상대국과는 미국에게도 결국은 좋지 않은 고율 관세를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 같은 경우 한때 110%의 관세 부과를 엄포했다가 현재는 30% 수준의 관세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계속하고 잇으며, 캐나다나 멕시코의 경우에도 형식적으로는 30~35%의 관세라지만 글머리에 언급했듯이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원산지 규정을 만족하는 상당수 품목에 대해서는 무관세 내지 저율 관세를 적용하기 때문에 평균 실효세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지금보다 더 낮추어질 가능성도 크다. 또한 한국, 일본, EU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과는 원래 예고했던 25%의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이미 합의했다.
즉 관세를 빌미로 협상과정에서 다음을 얻어내려는 것이 미국의 주된 목적이다. 캐나다나 멕시코 등 국경을 맞닿고 있는 나라의 경우 불법 입국자나 펜타닐 문제 등 국경 보안 강화가 주목적이며, 한국과 일본 및 EU 등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대미 투자 여력이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이런 미국의 의도는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및 EU 등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 내에서도 일방적인 관세전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는 상대방이 미국의 의도대로 굴복하지 않고 일정하게 버틸 경우 결국은 미국의 소비자나 생산자에게도 물가 인상이나 수출 감소 등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희토류 수출통제 등으로 나름 버티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교역 규모가 커서 미국에게도 피해가 바로 발생하는 캐나다 및 멕시코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 및 EU 등의 국가는 대미 수출 감소로 미국 소비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당장의 피해가 더 두려워서 미국과의 협상을 빨리 끝내면서 미국 내 직접투자 확대라는 미국의 주된 목표에 호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였고 EU가 뒤따랐으며 한국은 셋 중에는 제일 늦게 합의에 이르렀지만, 어차피 공동 대응 등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 며칠의 시간 차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세율은 단순히 미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요 수출품목 등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경쟁 국가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유불리 여부도 중요하므로, 대미 무역 구조가 비슷한 세 곳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좀 더 유리한 조건을 먼저 따낼 경우 다른 국가도 비슷한 조건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잘 따져보자면, 고율의 관세 부과가 우리나라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일종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좀 더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면 협상을 이렇게 빨리 끝낼 이유가 별로 없었다.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25%의 상호관세가 실행되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는 향후 3~4년간 500억~600억 달러 정도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런 고율 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경쟁 국가인 일본이나 EU가 먼저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공동 대응을 한 경우보다는 우리가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8월 1일이라는 시한에 목매지 말고 중국이나 캐나다 및 멕시코처럼 협상을 더 끄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향후 3~4년간 누적하더라도 500억~600억 달러 정도인 피해를 좀 더 줄이기 위해, 누적 피해액의 6~7배에 달하는 대미 직접투자를 약속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왜 협상 타결을 서둘렀을까? 여기에 이번 관세협상의 또다른 중요한 측면이 숨겨져 있다 (이는 일본이나 EU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이번 관세협상은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한국 등의 정부나 자본이 무조건 당하기만 한 것이 전혀 아니다. 물론 기존의 국제 통상규범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한 미국과 트럼프가 심각한 횡포를 부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국 자본이나 총자본으로서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를 일종의 새로운 이윤 창출 기회라고 바라보고 대응한 측면도 틀림없이 있다.
트럼프의 주목적인 미국 내 제조업 부활에 호응한다는 명분 하에 미국 내 직접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광대한 소비시장과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자본이 그간의 위치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피해추정액의 몇 배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협상을 빨리 끝낸 것이며 이는 일본이나 EU 역시 마찬가지다. 형식상 관세 협상의 외피를 두름으로써 얼핏 보기에는 한국, 일본, EU 대 미국이라는 국가 간 대립구도로 보이지만, 한국 등의 입장에서도 자본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결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미국의 횡포만을 강조하는 상당수 시각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거니와, 이는 국가 내지 민족 간 대립을 우선적으로 생각함으로써 국내 자본과의 일정한 협력 등 민족주의적 우경화로 흐를 위험성이 상당하다. 한국 자본은 결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며 과거 식민지 시기의 이른바 ‘민족자본’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 자본은 언제든지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도약하려고 기회를 노리는 쪽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조선산업에 대한 1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약속 등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번 협상의 진정한 피해자는 한국 자본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다. 이는 대미 투자에 동반되는 두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로 자본의 투자 여력이라는 것이 한도가 있으므로 대규모의 대미 투자에 집중하다 보면, 국내의 산업투자는 아무래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의 일자리나 노동조건 등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노동은 자본처럼 쉽게 이동할 수 없으므로, 이는 한국 내의 노동자민중에게 훨씬 큰 피해를 입힌다.
둘째, 보다 심각한 것은 대미 투자가 단순히 순수한 민간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에는 원래 리스크가 따르거니와, 특히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더욱 그렇다. 고비용의 문제나 숙련 노동력의 문제 등 미국 제조업의 기반 자체가 상당 정도 붕괴되었기에, 단지 대규모 직접투자만으로 미국 제조업이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은 별로 없다. 미국 경제 전체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체가 과거와 같은 번영을 다시 이루기는 극히 어려운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순수한 민간투자라면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해당 민간자본의 손실로 그치지만, 이번 대미 투자 약속처럼 정부 내지 국책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지급보증 등이 동반될 경우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은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 전체 더 정확히는 한국 노동자민중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결국 투자가 성공하면 초국적 자본 내지 글로벌 자본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고, 투자가 실패해도 그 실패에 따른 부담은 자본만이 아니라 정부와 노동자민중 전체가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는 자본의 논리에 적극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순수 민간투자에 비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기에,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음에도 경제적 공포를 조장하면서 협상을 빨리 끝낸 것이다. 진정한 적대는 한국과 미국 간의 적대가 아니라 한미의 자본 대 노동자민중 간의 적대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론
이상으로 한미 관세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면서 미국의 의도와 그에 대한 한국의 대응도 일정하게 평가해보았다. 이미 강조한 대로 현재의 관세협상을 단지 국가 간 관세율 협상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 이는 미국의 주목적을 오히려 가리게 되거니와, 한국 자본이 이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는 측면을 무시하게 된다. 또한 자본이 책임저야 할 투자 리스크를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함께 책임지게 되며, 국내의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경시하도록 만든다.
진정한 피해자가 누구이며 적대의 전선이 실제로 어디에서 형성되는가를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추후 예상되는 노동자민중의 피해에 대해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진행된 협상 결과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번 협상 결과는 아쉽지만 선방한 것이라는 식의 손쉬운 평가에서 벗어나서 이후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대미 직접 투자가 아니라 국내의 산업과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이 우선되도록 해야 하며, 투자 실패의 리스크를 자본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대항해서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 또한 강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트럼프 식의 미봉책이 아니라 노동과 상호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대안적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갈 때만이 극복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